태껸 무지성에서 내 개인 10년간의 이야기를 던졌구나... ㅎㅎ 택견에서 서울시 문화재와 MMA 도전까지.
구큰타
참... 여기까지 온 것도 신기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도 많다.
프로젝트 임호를 진행하며 지나고 보니.
첫 필운동 건물주 할머니가 송덕기 스승님 사진을 보고
덜덜 떨면서 "저 아저씨... 무서운 아저씨야!!" 라고 하셨다.
"왜 그러세요? 저의 스승님의 스승님이에요(해맑)" 라고 했었는데 그 분한테는 그럴 수 있겠다... 이제서야 그런 마음이 든다.
할머니가 남편이 순경. 아버지도 순경 그렇게 동네 주민들에게 들었다.
할머니 아버지 순경이면... 일제 강점기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냥 우리보고선 아마 자식들한테 갈 복이 사라질거라고 공포도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예상이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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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사직로 체육관 자리는
김병수 선생님이 송덕기 스승님과 함께 식당 앞에서 찍은 식당. 거기의 요리사셨던 분이 차린 식당이었다.
그 분이 어떤 업종의 사람이 들어오나 이야기를 듣다가 사진 보여드렸는데 ㅎㅎㅎ 이 식당 나 일하던데야 라고 하셨다.
보증금 묶기는 이슈일때.
일부 보증금 드리고 전부를 못 드렸었다. 그리고 중간에 자금이 붕 떠서 나머지 잔금 치룰때.
산와머니 같은 것들이나 다른 것들을 통해 빚을 지고 융통하고 했었다.
왜냐면 사회 생활에 대한 경력(31살까지 대학원, 박하다가 그만둠)이 적고 첫 개인사업자라 은행에서는 빌려주는 돈의 한도가 낮았다.
융통되기 전, 융통 후 우선 건물주 아저씨가 그래도 송덕기 스승님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으셨는지.
"그럼 잔금 월세 낼때, 조금씩 더 얹어서 내" 라고 하셔서.
그 뒤로 열심히 조금씩 월세+잔금 분할로 드렸다.
지금 이것도 돌아서 생각하면 참 좋은 일이었다.
독립문 옮기게 될떄도... 매우 미안해 해며 말씀하셨다.
월세도 이사준비하는 동안 받지도 않았었다. 원상복구 자짤한것들은 어차피 건물 전체 손볼거라고 지나가시기까지.
이게 참 인연이라는 것들이 있기는 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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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사거리 입구 지금, 독립문 초등학교 정문 앞.
일하면서도 참... 거칠게 보냈구나 내 10년은 그냥 2년 반 외엔 완전 투잡의 시간으로 보냈구만.
이렇게까지 고생길 오는데도 함께 해주는 멤버들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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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프로젝트 임호
윗대태껸(택견, Taekkyeon), 고용우 스승님의 가르침. 송덕기 스승님의 행적과 기술. 그것들 가르친 임호 스승님을 찾다보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혀왔던 한국 근현대의 진짜 폭풍. 거기에 재밌고도 조선의 무예를 고민하는 이야기 덧거리.(덧걸이 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