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껸 기록 윗대태껸 인왕체육관에서 인왕MMA로.
구큰타
2008년 설립된 동호회에
2010년 언저리부터 연구때문에 들락거리다
2015년 종로 수련 모임으로 출발. 위대태껸(택견, Taekkyeon) 청년모임으로 활동.
2016년 위대태껸연구센터
진짜 이때 오는 사람만 왔다. 사업자같은 운영 느낌이라기 보다 사재 털어서 사람만드는 구조였음.
도와주는 후배는 와서 보조 해주고 80~100만원 사이 챙겨주고 저녁 밥사주고 그게 일상이었다.
임대료도 미친수준. 게다가 서촌 거품기여서 권리금까지 있었지.
게다가 사단법인 인가 준비(협회 준비)한다고 혼자 총대매고 등기소나 이곳 저곳 다녔지.
초기 자금 내 개인 사재로 출현했지(+입회비) 정도.

2011년 선생님 방한때 굼슬르기 교정

2014년 선생님 3월 1일 방한 후 5월 14일 출국. 이때 하던 일 그만두고 내내 모시고 다녔다. 많이 배우기도 함. 사진엔 동호회 회원들과 여인제 선생님, 보존회의 김태훈 선생님이 있다.

2014년 양천 수련원 물난리때.... 청소하러.

2016년 10월 창립총회

양천에서 창립 이사진들과 회의(양천수련원)
결국 비즈니스를 위해 후배 의견과 같이 있던 젊은 친구들 의견을 더해서.
"위대태껸 인왕체육관"
2017년 위대태껸 인왕체육관 시기 시작.
이 초반이 진짜 인생에서 손꼽히는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동대문에서 새벽 커피배달하며 체육관 운영을 하며.
잠도 거의 4시간 이상 잔적도 없다. 이때 주말반도 운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첫째 놈이 그냥 혼자 커버린 것 같았다.
열심히 해서 "태껸"이란 이름으로 34명까지 확보. 근데 사실 34명에 초기 연구센터때 인원 빼면 25명 조금 넘는 수준.
게다가 초등부 뺴면 10명 정도랄까. 그때 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몇 없다.
잊을만하면 다시 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후 코로나라는 재앙시작. 진짜 체육관 지옥. 돈을 나라에서 지원해주지만, 결국 대출이며 융자다.
2020년 건물 노후화로 급하게 10월 말에 독립문 앞 동영 숯불갈비 지하로 이사.
이사 했지만 30명은 살짝 안되는 이름. 게다가 이사 온 첫날 문앞 독립문 초에서는 ㄱㄱ협회 회장님께서
학교 체육 정규 수업으로 결련택견을 집어넣어서(인맥도 좋으셔).... 초등부 폭방.
진짜 사직동 체육관때부터 있던 애들 몇이 따라온 수준이었다.
이후 ㄱㄱ협회에서 소화를 못했는지 ㄷㄷ협회에서 치고 들어옴. 누구나 아는 그곳. 이때 2명 등록.
이유는 애들이 태껸이 다른걸 알아버린 몇 애들. ㄱㄱ 태껸 하다가 ㄷㄷ 태껸 하니까.. 이상하다 하고 우리쪽으로 옴.
걔들은 아직도 열심히다. 여튼 그 수업으로 초등부는 여전히 폭방.
성인은 태껸 타이틀로 여전히 그자리. 와도 궁금증 해결하러 여러 지역에서 단발성으로 오는 정도.
윗대태껸 너무 궁금한데 멀어요가 골자였다.
그리고 문제는 2024년 코로나 지원금의 본격적인 상환이 시작되었다. ㅎㅎㅎ
이때, 인왕체육관도 청계관도 거의 목매달 수준. 적정 인원까지 쏱아 부은 금액이 있어 상환은 필요하고 인구 유입도 필요했다.
윗대태껸은 자체적인 수련은 지속하나. 회원들의 동기 부여와 성장을 위한 플랫폼과 참여 컨텐츠(수련 컨텐츠 말고)는 부족했다.
게다가 가끔 오는 성인 수련생 케이스.
전통문화에 심취한 이
혹은 너무 심취해서 도포자락 걸치고 오는 이
태극권같은 것 생각하고 오는 어르신
무예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용가능한 연령대가 주가 되어야 하는 컨텐츠인데. 게다가 그 무예의 성과나 질을 알리기 위해서는
좋은 지도자. 좋은 수련방식과 환경.
게다가 좋은 수련생이 필요하다.
좋은 수련생은 무예나 운동에 자질이 있으며, 적당히 호전적이어야 한다.
결국 이 결과로 여러사람들이 함께 혜택과 이미지를 업고선 굴러가는 것이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수련생.
사회경험이 많은 다양한 수련생은 좋다. 이들은 그 이미지에 함께 새로운 것들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인것이다.
근데 그 시작이 항상 삐그덕 거린다.
결국 위대태껸연구센터에서 인왕체육관으로 인왕체육관에서 좀 더 확실한 타겟팅을 위한 명칭으로 MMA라는 타이틀을 고민 선상에 올렸다.
윗대태껸협회가 위대태껸회로 설립되기 이전 동호회 시절부터
항상 모두가 동의 하는 내용은 기술 체계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시대에 요구하는 실전에 가까운 곳.
MMA에서 태껸을 증명하고 이를 바탕삼아 정리하는 것이었다.
결국 여러 일들과 경제적인 문제
수련생 유입을 염두에 두고 어렵게 미국에 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우선 먹고 사는게 우선이야라고 하셨다.
택배일을 하느라 새벽에 통화를 드리고 업무가 끝나는 낮에 다시 연락을 드렸다.(택배는 자정에 시작해서 낮 1-2시에 끝난다.)
대뜸 나만 이야기하면 그렇기에 협회와 동호회 시절부터 가장 오래 계신
양천의 여인제 선생님께도 말씀 드리고 여인제 선생님의 주제로 청계의 강태경 관장도 함께 따로 통화를 하는 것으로 진행을 하기로 했다.
결과는 아쉬워하시는 부분도 있지만 먹고 살고 사람 많은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범진과 젊은 회원들을 필두로 개인 사업자명(인왕체육관에서 인왕MMA)로 변경하였다.
협회의 업무와 소속 관으로 업무는 동일하나. 결국 시합에 나가는 관 또는 팀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는것이 가장 간단할 것이다.
윗대태껸으로 시합을 참가하면 묘한 먹잇감을 보는 냉소의 눈빛과 그것을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원들이 찾아와도 기존 택견 이미지를 생각하고 온 사람들은 왜 다른것을 하냐는 시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달 또는 일주 뒤면 안나온다.
그리고 조금 알아봐도 물어보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 사전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변화는 이문제를 바로 해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껸을 연구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위해 싸워온 시간이 많은지라.
머리로는 나도 이해하지만 마음 한켠엔 항상 무언가가 있기에 답답해서 글을 적는다.


2015년 동호회 준비





2016년 연구센터

2017년 인왕체육관 사직로


2018년 미국


복귀 후 다시 투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