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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서 돌아온 사람 송덕기(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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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서 돌아온 사람 송덕기(1985년 9월).pdf

 

 

출처: 월간 지면 인터뷰 (1985년 9월호)
타이틀: 삼국시대에서 돌아온 사람 — 한국전통무술 태껸(택견, Taekkyeon)보유자 송덕기

삼국시대에서 돌아온 사람
한국전통무술 태껸보유자 송덕기 옹

글 / 하재봉 기자 · 사진 / 강재윤 기자

새벽 5시.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사직공원, 오른쪽에 있는 수영장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어느새 시끄러운 세상은 사라지고 오래된 숲과 바위,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하늘이 나타난다. 새벽 5시에 이 길을 따라 황학정, 약수터까지 가본 사람은 안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인 한 분이 정정한 걸음걸이로 산책하는 것을. 그가 지나가면 만나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무들도 나뭇잎의 빛나는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한다.

송덕기(宋德基) 옹. 올해 아흔일곱. 1백 세를 눈앞에 두었지만 그의 붉은 혈색이 도는 얼굴, 곧은 등, 정정한 걸음걸이를 본 사람은 그의 나이를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해방 후 정리된 호적에는 아흔넷으로 되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의 나이가 아니라 그가 끊어지는 우리 고유의 무술, 태껸의 마지막 보유자라는 점이다.

오후 3시 황학정 필운동 등과정 터인 이곳, 태양이 서쪽으로 점점 기우는 이 시각,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철책 위 야산에서는 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것같이 이상한 움직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러는 한복을 입고 대님을 매고 짚신을 신고 있고, 또 몇몇은 웃옷을 벗어 제친 20대 건장한 사내들이다. 송덕기 옹은 한쪽 옆에서 그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매로 주시하고 있다. '견주기'라고 부르는 두 사람의 대련 연습이 끝나면, 그는 그들의 결점을 지적하고 고쳐준다.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한 동작 한 동작 바로잡는다. 태껸은 다른 무술에 비해 곡선적이고 부드러우며 유연성을 지니고 있지만 '외유내강'이라는 말처럼 부드러움 속에는 한없는 힘이 숨어 있다. 태껸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83년 6월 1일이다.

스승 임호(林虎)로부터 이어진 최후의 전승

1892년 1월 19일, 한양 사직골에서 송태희(宋泰熙) 씨의 7남 7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송덕기 옹은 13세 되던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태껸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태껸의 일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 역시 당시 태껸의 고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태껸을 전수해 주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가 18세 되던 무렵, 아버지의 친구인 임호(林虎) 선생이 본격적으로 그에게 태껸의 비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임호 선생은 당시 태껸계의 제1인자였는데, 송덕기 옹의 신체가 좋고 몸놀림이 유연하여 그를 제자로 삼은 것이다. 그는 다른 6형제와 함께 태껸을 배웠으나 최후까지 남은 사람은 송덕기 옹 뿐이었다. 임호 선생은 임종시에 송 옹의 배를 쓸어주었다. 그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다는 표시였다.

송 옹의 기억에 의하면 서울 주변에서 태껸을 하는 사람들은 위대(웃대)패와 아랫대패로 나뉘어서 시합을 했는데, 위대패는 성(城) 안에 사는 사람들이고, 아랫대패는 성 밖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위대패에는 송 옹의 스승인 임호, 송덕기 등이 있었고 아랫대패에는 신재영, 김홍식, 박무경 등이 있었다. 태껸은 1년 내내 하는 것이 아니라, 단오 무렵에 이웃 마을 태껸패들과 시합을 하는 형식으로 벌어졌다. 마을마다 각각 십사오 명 정도의 선수를 뽑아, 이긴 사람은 계속 남아 끝까지 싸웠는데 한 사람을 이기면 한 마당, 두 사람을 이기면 두 마당, 이런 식으로 해서 열 마당을 최고로 쳤다.

외유내강의 순리와 기술 체계

태껸의 정신은 다른 무술같이 뚜렷하게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자연철학, 도가의 무위사상 같은 것에서 그 근본정신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평소 송 옹은 제자들에게 '자연주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인위적인 모든 것을 아주 싫어한다. 태껸은 힘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순응하면서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한다. 평소에 송 옹이 자주 하는 말은 첫째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 둘째 대인관계에서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셋째 꼭 싸워도 되지 않을 때 싸우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의 수치다 등이다.

태껸의 기본 동작은 품자 형에서 시작하는데, 발을 너무 벌려도 힘이 없고 너무 좁혀도 넘어지기 쉬우므로 어깨너비로 알맞게 벌린다. 그 상태에서 왼발을 어깨너비만큼 양발 사이의 앞으로 품(品) 자가 되게 내딛으면 좌품, 오른발을 내딛으면 우품이 된다. 이것의 연속 동작이 품밟기이다. 태껸의 동작은 이 품밟기와 활개짓(양팔을 앞뒤나 좌우로 크게 휘젓는), 그리고 발질, 손질 등이 있다. 특히 태껸은 '각희(脚戲)'라고 불리울 정도로 발을 쓰는 기술이 뛰어나다. 황학정 정자 안에 4미터 정도의 높이가 되는 곳에 보가 걸려 있는데, 지금부터 17년 전쯤인 그의 나이 77세 되던 무렵에 송 옹은 그것을 뛰어 발로 찼다고 한다. 이는 지금도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살수(殺手)의 은닉과 활수(活手)의 보존

"원래 태껸에는 공격용인 살수(殺手), 즉 위험한 동작들이 많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살수는 많이 사라지고 대신 활수(活手), 즉 보호용의 동작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 옹도 제자들에게 살수를 가르쳐 주기를 꺼립니다."

처음 태껸을 배울 때는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뭇가지에 짚으로 사람 형용을 하여 만들고 아랫도리를 헝겊으로 동여 발길질을 하면서 익혔다고 한다. 송 옹을 비롯하여 옛날 사직골 근처에서 태껸을 배웠던 사람들은 서울 근교의 인왕산, 삼각산, 애오개 등지를 돌아다니며 각각 장소의 특성에 따라 연습하는 기술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소원, 그리고 뒷모습

지금 1백 세를 눈앞에 둔 송 옹의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도장을 하나 차리는 것이다. "다 늙어서 무슨 돈에 대한 욕심이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도장을 내 손으로 마련해 젊은 사람들에게 좀더 정확히 우리의 전통무술인 태껸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생활 방편이 별로 없던 그는 3년 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매달 국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비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사직공원 건너편 단칸방에 기거하며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형편이기에, 그의 힘만으로는 도장을 차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올 겨울만 지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야..."

뒷짐을 지고 언덕길을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한 사람의 노인이 황혼녘의 구름 빛을 받으며 길을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면 그의 전 생애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오랫동안 빈 하늘을 울리며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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